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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전쟁_장진호 전투

2 ifree 10 2,364 2017.06.28 15:59

BREAKOUT-The Chosin Reservoir Campaign, Korea 1950

미 해병 1사단 소속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마틴 러스(Martin Russ)의 체험 소설이다.

이 책을 언제 읽었는지는 하두 오래되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족히 십년은 넘은 것 같다.

그 즈음에 읽은 두권의 인상 깊은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BREAKOUT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리랑(님 웨일스)'이었다.

 

오늘 문재인태통령이 미 방문길에 오르면서 첫 방문지로 장진호전투비를 찾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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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버지니아주 판티코의 미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연합뉴스


우리에게 육이오동란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장면은 끊어진 한강인도교, 낙동강전투,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후 시청에 걸린 태극기, 두만강물 떠먹는 국군장병 뭐 이런 것이겠지만, 미국민에게 육이오는 [잊혀진전쟁] 이다.

진심은 잊고 싶은 전쟁 일수도 있다.

육이오 참전 미군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참전 경력에 침묵해야만 했다.

그것은 미국민에게 육이오는 어떤면에서는 치욕스러운 과거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육이오는 곧 '장진호전투'다.

낙동강전투도 아니고 인천상륙작전도 아니고 서울 수복도 아니다

장진호 전투가 육이오의 시작이고 끝이다.

미 전사상 진주만 공습 이후 가장 참혹했던 전투가 또한 장진호 전투다.

장진호전투는 '모스코바전투', '스탈린그라드전투', 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전투로 꼽힌다.

세계 전사에 기록될 만큼 치열했던 전투에 대해 한국인의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것 또한 미쓰테리다.

진주만의 치욕은 리틀보이로 되갚아 줬지만 장진호 전투의 상처는 치유받지 못했다.

뛰어난 야전 지휘관인 미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의 리더쉽과 결단력 덕분에 미 해병은 후퇴하고도 이기는 전공을 세웠지만 맥아더 전쟁 지휘부의 그릇된 오판으로 미육군 8사단의 서부 전선이 맥없이 무너지는 바람에 동부 전선의 1 해병사단이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필사의 탈출을 해야만 했고 이 후퇴가 전쟁의 판도를 가장 명확하게 갈라놓은 사건이 되었다.

소설에 나온 두가지 워딩이 생각난다.

 

"육군은 전투병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으로서는 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그때도 혹은 지금도 미군에게 있어 육군은 점령지의 치안 정도나 유지하는 지원부대이지 전투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부 전선의 미 육군 8사단이 총알 한방 안쏴보고 꽁무니를 빼 버리는 바람에 전선이 삽시간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미군에게서 전투병은 해병대다.

 

후퇴작전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스미스 소장은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당시 장진호 전투를 지휘했던 자는 '펑더화이(팽덕회)" 였다고 기억된다.

노회한 야전군인 팽덕회는 중국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 12만명)으로 2만명에 불과한 미 제1해병대를 소리없이 포위해서 가둬 버렸던 것이다.

미군은 첫 전투가 있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중공군이 참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팽덕회는 중국공산혁명을 다룬 대표 소설인 '중국의 붉은별'(에드가 스노우)에서 본 기억에 따르면 부유한 지방 군벌이었지만 모택동을 만나고는 전 재산을 인민에게 나눠주고 이른바 해방전선에 참전한 인물이다.

당시 중국 야전군 사령관 중 가장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장개석 정부군의 청야 작전으로 근거지를 상실한 홍군이 장장 2만 5천리나 되는 산맥과 협곡 밀림을 이동하는 '대장정' 중에 치뤘던 수많은 전투에서 주은래 등과 홍군을 지휘하여 오히려 중국 공산당 혁명을 승전으로 이끈 인물이다.

대장정의 판도를 바꾸었던 전투, 절대로 건널 수 없다고 여겨졌던 장강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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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의 '대장정'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저지선은 장강 최상류 험지 절벽 사이를 쇠사슬로 잇고 판자를 깔은 루딩교였다.

백군은 루딩교의 판자를 뜯어내고  반대편에 기관총을 설치했다.

후에 전하기로는 장개석은 다리 폭파를 지시했지만 다리를 재 설치하는 것이 엄청난 난공사라 폭파대신 판자만 뜯어냈다고 한다.

만약, 이 다리를 폭파했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쇠사슬이 연결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기관총이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 사슬에 거꾸로 매달려 건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도강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홍군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후방과 강 건너편으로 백군의 지원군이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곧 전멸을 뜻했다.

팽덕회의 결사대는 기관총의 난사아래 수도없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나갔지만 죽겠노라는 자원자는 멈추질 않았다.

'대장정'에 동행하며 그 장면을 기록했던 에드가 스노우의 기억에 따르면 마침내 어느 순간이 되어서는 기관총을 쏘아대던 병사가 '대체 저들은 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지로 끊임없이 뛰어드는가?'를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고 그 순간 홍군 결사대가 다리를 건너 수류탄을 투척했다고 전한다.

 

장진호 전투만을 본다면 미군의 손실에 비해 중공군의 손실이 열배가 넘었으므로 승리한 전투임이 분명하다.

또한 스미스소장의 치밀한 후퇴 작전으로 중공군 7개 사단은 전투병의 절반 이상이 손실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고 이 후 중공군의 남진을 막는 결정타가 되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사 전체를 본다면 전투는 이겼으나 전쟁의 국면을 돌려놓은 패전사이기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군은 후퇴했고 그 자리는 중공군이 차지했다.

이쯤해서 장진호 후퇴 작전의 종착역 흥남부두에서 1만명이 넘는 피난민들을 구제한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선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하며  한 타임 쉬어간다. 

 

 

 

아군 적군을 망라하고 장진호 전투에서 총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얼어죽은 병사가 훨씬 많았다.

특히, 겨울 전투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중공군에게는 갑자기 불어닥친 영하 40℃의 혹한은 죽음을 부르는 '흑사병'과도 같았다.

소설을 읽은지 하두 오래돼서 장진호 전투사에 대한 얘기는 잘 기억도 안나지만, 저자인 마틴 러스가 기억하는 '중공군'은 잔인하지도 무도(無道)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록하고있다.

해가 지면 요란한 꾕과리,나팔 소리와 함께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중공군은 때론 심지어 총도 쏘지 않으면서 천천히 걸어서 총구 앞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시체가 시체를 덮고 마침내는 총알이 떨어져 백병전을 벌이는 참혹한 전투가 밤새 벌어졌지만 해가 뜨면 중공군이 흔적도 없이 철수하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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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뜬 낮에는 공군 전력 때문에 중공군은 밤에만 전투를 했다.

그런데 낮에는 또 적십자 깃발을 들고서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서 미군 시신를 수습하거나 부상병을 구출하는 것을 보고서도 중공군이 공격을 하지 않는다.

 

총알이 없었던가?

또는, 제네바협약에 따른 인도주의적 배려를 했던가?

또는, 시방은 쉴 타임이지 쌈질할 타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가?

 

필자는 그 글을 읽으면서 과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중공군의 머리속에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필자 보기에는 그들은 적을 죽이기 위해 그 전쟁에 참전한 것이 아니기도 했고 미군이 적이라는 신념 자체도 없었지 않았나 싶다.

단지, 죽음조차 일상이 된 삶에서 근무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꾕과리)가 울리면 일하러 가는 것처럼 전투를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면 견딜 수 없는 혹한이 몰아쳤다. 

죽음의 공포마저 얼려버린 영하 40도 극한의 지옥속에서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고 있는 미군들 틈으로 중공군이 다가와 불을 쬐고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몸을 녹여야만 죽지 않는다는 동물적인 본능과 따뜻한 불빛이 끌어당기는 강한 유혹은 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적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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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전쟁 장진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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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지만,

오늘 그 전투를 기억하기 위해 문재인대통령이 간다고 한다.

 

 

Comments

M 관리자 2017.06.28 21:31
역사를 건조하게 읽는 것은 항상 아름다워요..
M 관리자 2017.06.28 22:53
오호라...
ㅋ님.. 왜 회원가입 안하세요?
2 ifree 2017.06.28 23:20
소설이라...
그렇죠 소설이죠.
근데, 십여년전 Breakout을 통해서나마 장진호  전투를 알게 되었을 때 제가 느꼈던건 내가 배운 국사책에 나오는 육이오가 더 소설같더라는 겁니다.
내가 배운 육이오에는 미국이 보는 korean  war는 없더군요.
쓰고 싶은 얘기만 쓰고 가르키고 싶은 것만 가르키고 보고싶은 것만 보는것이 역사를 조망하는 바른 태도는 아닐겁니다.
3 정해갑 2017.06.29 00:24
>팽덕회의 결사대는 기관총의 난사아래 수도없이 "꽃잎"이 되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나갔지만 죽겠노라는 결기는 멈추질 않았다.
저는 윗글처럼 "시체"를 "꽃잎"이라고 순화시킨다고 하는 말들이 매우 불편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왜곡이 일어나게 되거든요.... 일제시대의 "성노예"를 "위안부"로 표현하는것, 전직 판사가 포함된 "사법비리"를 "전관예우"라고 하는 것  등등.. 마치 좋은 것인양 꾸미는 것 같아서요...
M 관리자 2017.06.29 01:34
비밀글입니다.
2 ifree 2017.06.29 02:16
비밀글입니다.
M 관리자 2017.06.29 02:36
비밀글입니다.
G 2017.06.29 05:41
비밀글입니다.
M 관리자 2017.06.29 07:25
다시 보니 정해갑님이 잘 정리하셨네요...
감사합니다..
G 지배철 2017.08.29 00:25
원래 올린 글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많이 수정하셨네요.
한가지 더!
에드가 스노는 대장정에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수정해 주세요.
화려한 역사분식은 용납되는 사이트.....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