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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하지 않는 인간

2 ifree 9 2,346 2016.04.11 22:07
근대 이후 인간의 모든 활동은 생산과 소비로 정의되었다.
미래에는 이 가치 축이 무너질 것이 확실하다.
더는 인간은 생산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할 수가 없게 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생산력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의 사회활동에서 생산이 사라진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해보라. 소비만 있는 세상이 온다.
그 틀림없는 미래를 위해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지금 20년 뒤 사용하기 위해 인간에게 생산을 위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불도저 앞에서 전국민에게 삽질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푼수 짓이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데 사실 생산은 불필요하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정의대로 돈만 돌면 된다.
따라서 미래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서 생산에 대체되는 성취감을 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댓가로 소비할 수 있는 돈을 받는다.
사실은 돈 조차도 가상의 가치일 뿐이다.
이 틀림없이 다가올 놀라운 세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이 생산을 지배할 그 세계에서 조차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생산은 인공지능이 하겠지만 소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라스베가스에서 인생한방의 짜릿함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왜? 인공지능은 소비를 또 도박을 할 수 없을까?
소비의 가치는 결코 계량화 될 수 없다.
내가 천만원 쳐 주겠다면 지게 작대기라도 그 가치는 나에게는 천만원인 것이다.
존재한 적 없는 가치에 대한 과감한 결론 그것이 소비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생각컨데 그 때가 되면 생산을 잘하는데 유용한 국영수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잘 하는 놈이 더 잘 사는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

Comments

M 관리자 2016.04.11 22:19
그게 "철학"인거죠?
2 ifree 2016.04.11 22:35
관리자님
제가 보기에는 그렀습니다.
관리자님 죽기 전에 필경 제가 오늘 예언한 세상을 보게 될겁니다.
2 권희범 2016.04.12 00:49
생산을 잘 하는데 유용한 게 국영순가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철학인가요?
세상이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자본주의인 건 아니죠.
그런 세상이 올지 안올지 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아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지 않길 바랍니다.

루소는 '에밀'에서 가장 극적이고 존중할만한 직업을 농부,대장장이,목수 순으로 꼽았습니다.
땅에 발 디디고 살아가매 저 세가지 말고는 동네에 술 잘 빚는 사람이랑 노래 짓는 사람 정도 있으면 살만하지 싶습니다.
알파고가 설쳐대는 '세상'은 어쩌지 못하겠지만  '마을' 정도는 구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2 ifree 2016.04.12 05:53
권희범님.
학습방식은 두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알아낸 것을 두번째로 익히는 것이 첫번째일 것입니다.
이건 알파고가 인간을 대신할 것이 확실합니다.
국영수라는 표현은 두번째 학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이 알아낸 알고리즘에 의한 자기 학습도 역시 알파고의 승리가 분명하죠?
목수도 대장장이도 농부도 알파고가 대신 합니다.
지금 인간이 영위하는 거의 모든 생산 활동은 알파고가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인간의 차지가 될까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만이 알파고가 이를수 없는 영역입니다.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것 같아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들어 보지요.
숫자 '0'은 원래 세상에 존재했던 것인가요?
더 가깝게 에너지샵은 어떤가요?
모두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과 답변의 결과들입니다
이런 능력은 알파고가 넘어오기 불가능합니다.
깊고 심오한 창의적인 발상이 무엇인지?  다시금 그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고 봅니다.
조선시대 인재를 뽑는 과거란 무엇이었는지요?
시 한수 누가 잘쓰나? 그걸로 뽑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바보 놀음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산천의 수려함과 군자의 도리를 논하는 글자놀음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것으로 나라의 곳간을 책임지는 이조판서를 정하고 나라의 안정을 책임지는 병조판서의 재목을 골랐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시가 무엇입니까?
시를 통해서 대체 어떤 능력을 들여다 보고자 했을까요?
시에는 두번째는 없습니다.
첫번째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첫번째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 바로 그 능력이 지고지순한 인간의 능력이라고 본 것이죠.
전쟁, 자연재해, 인간집단간의 갈등과 같은 그들이 풀어야한 수많은 문제들에 미리 정해놓은 정답이 있을 수 없음입니다.
그들도 결국 그것을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을 찾아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미 사회학자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에는 시험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생산하지 않습니다.
장난 삼아 해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직업의 90%가 인공지능의 차지가 되면 실업, 자아성취에 대한 좌절, 수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미 수천만명의 택시 드라이브 운명은 결정 났죠?
그 다음은 어떤 직업이 될까요?  택배기사?  우편배달부?  의사? 군인? 파일럿? 어쩌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닐겁니다.
만약 권선생께서 그 시대를 산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움직이는 패러다임이 다가올 것은 분명합니다.
언제인가?  만 모르는 거죠.

이제는 다시 시를 잘쓰는 인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를 잘 쓰려면 어떻해야 할까요?
어느순간에는 눈과 귀를 닫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눈과 귀가 열린 상태에서 따라하기 잘하는 능력은 이제 인간에게는 중요한 능력이 아닙니다.
어느순간에는 눈과 귀를 통한 경험학습을 멈추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숙고를 해야만 시를 쓸 수가 있습니다.
M 관리자 2016.04.12 08:56
ㅎ..
저희 협회 홈페이지의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진지하다는 거여요..
원래 에너지분야가 사실과 사실의 경합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다툼일 가능성이 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의 목표는 거의 같을 거여요..
ifree 님이 전에 적어 주셨듯이.. "젊은 시절 책 몇 권 잘못 읽은 죄"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거죠.

두 분의 말씀도 찬찬히 보면 같은 내용이잖아요. 항상 디테일이 상충될 뿐이죠.

최소한 새벽에 협회 홈페이지의 글을 읽고, 쓰고 하신 분들은 이상향이 같다고 봐요..
그래서 항상 두 분께 감사드려요..^^
G edenenc 2016.04.12 12:06
비밀글입니다.
1 이장희 2016.04.12 12:11
수년전 접한 자료에 따르면, 향후 20~30년 사이에 사라질 직업에 '목수'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판검사와 변호사도 포함됐는데 말이죠.
목수의 일에는 분명 창조적인 범주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랫동안 지속되길 기대합니다.
단, 꾸준히 노력하며 자기 개발을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2 권희범 2016.04.13 01:15
ifree님이 말씀하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가 잘못 이해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신 부분들은 잘 알아들었고 공감합니다.
그치만 생산은 기계가 알아서 다 해주는 세상을 생각하며 떠올릴 질문은
어떻게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 듯 합니다.
기계가 생산해내는 것들이 모두에게 나눠질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아들에게 농부와 대장장이와 목수의 기술을 모두 익혀 살아남으라고 가르치겠습니다.
노동하지 않는 삶은 저에겐 별 가치가 없습니다.
바보 이반의 나라에서도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불러가매 살지 않았을까요.

비가 제법 오네요. 오전 중에 그친다니 늦잠자고 투표하러 가야겠습니다.ㅎ
2 ifree 2016.04.13 07:51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짧으면 명쾌하기 보다는 모호하고 길면 정확함에 앞서 지루하니 생각의 표현이 참 쉽지않네요.
분배의 문제와 부의 불균형이 심해지기는 할 것입니다만, 먹고는 살 것입니다.
과거 농업사회나 근대 산업사회와는 달리 노동력이 없다고 생산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온 세상 사람들이 쓰고도 남을 만큼 지금보다 훨씬 많은 물건이 시장에 나오게 되고 또 누군가는 돈 주고 그것을 소비해야 부자도 부를 축적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싫던 좋던 먹고 살만큼의 돈은 주는게 부자들에게도 유리합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런 개념은 이미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기본소득(basic  income  guarantee)이라고 하고 미국은 네가티브텍스(돌려주는소득세?)라고 합니다만 결과는 똑같이 정부가 일정액의 돈을 그냥 국민에게 주는 겁니다.
우리도 언젠가 누가 모든 청년에게 한달에 20만원인가? 그냥 주겠다고 했다가...그게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네요. 암튼 비슷한 개념에서 출발했을 겁니다.
아마 이런 개념의 확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민을 할 걸로 봅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글타고 막을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할 수 없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