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으면 그때서야 솜방망이 처벌.. 부실공사 못 막는 法

서화숙 2014. 8. 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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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집 이야기](7) 부실건축 당연하게 만드는 '무책임'규정

올 5월 아산 오피스텔 짓다 기우뚱

건축주가 건설업체 면허 빌려 기초공사 설계대로 안 하고 날림

다중시설·주거로 안 봐 관리 사각

2~5명 사망 때 영업정지 고작 석달, 부실공사 처벌 약해 예방 효과 없어

"감리 기능 민간 위임하는 것도 문제"

'집장사'가 시공사 면허를 돈주고 빌려서 멋대로 짓다가 무너져 버린 아산 오피스텔. 돈 준 업자는 물론 면허를 빌려준 시공업체나 감리를 포기한 건축사 모두가 책임이 크다. 발각이 되어도 처벌은 약하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 아산시가 둔포테크노벨리라는 이름으로 야심차게 조성중인 산업단지에 건설중인 오피스텔 한 채가 20도나 기울어진 사실은 5월 12일 아산경찰서의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말썽이 난 오피스텔은 완공을 불과 열흘 앞두고 있었다.

이 오피스텔은 연면적 1,647㎡짜리(500평 정도) 7층 건물로 고시원 43채, 오피스텔 14채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바로 옆에는 똑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진 오피스텔이 한 채 더 있었다. 만약 이 쌍둥이 오피스텔 건물이 그냥 완공됐다면 그곳에 살았을 114명이 갑자기 떼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는 부실건축이었다.

이 사건은 기본을 무시한 선박개조로 304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 건축판 세월호로 눈길을 끌었으나 완공 전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인명 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그 뒤에 잇따라 일어나 인명 피해가 속출한 사건들에 묻혀 버렸다. 근본원인이 뭔지, 무엇을 막아야 건축판 세월호 참사는 막을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지금부터 아산오피스텔 기우뚱 사건을 차근차근 정리해보겠다.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한국 건설업계, 건축계가 한눈에 보인다.

오피스텔이 붕괴한 원인은 간단하다. 원래 이곳은 지하 25미터에 암반층이 있다. 그러면 지하 25미터까지 기초파일을 박아야 하는데 지하 15미터까지만 기둥을 박았다. 지하암반층을 알아내기 위한 지질검사는 하지 않았다. 두번째로는 설계상 건물마다 기초파일을 79개씩 박도록 되어 있으나 50개 밖에 박지 않았다. 셋째, 기초파일의 두께는 설계상 700미리미터로 명시돼 있으나 550미리미터로 대체했다. 그러니 이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나마 입주 전에 사고가 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람이 들어가 살 건물이면 건축허가도 받고 자격 있는 업체가 시공을 맡는 것은 당연하고 제대로 시공이 되는지 감독도 받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장난감처럼 무너졌을까.

가장 큰 문제는 엉터리로 공사를 한 시공사에 있다. 아산시청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이 회사의 시공사는 인석디엔씨(대표 김영식·경기도 성남시 소재)이다. '아산시청에 제출한 서류'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실제와 서류가 달랐기 때문이다.

두번째 책임은 감리사에 있다. 감리란 시공사가 제대로 공사를 하는지 관리감독하는 기능을 말한다. 감리사가 감리를 철저하게 했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관리감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역시 서류상 감리회사는 두리건축사사무소(대표 최갑수·경기도 오산시 소재)이다.

이 건물의 감리업체는 이 건물의 설계회사이기도 하다. 어떻게 설계회사와 감리회사가 같을 수 있을까. 설계자가 감리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또한 설계자가 설계한대로 건축공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설계자가 감리를 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맞다. 물론 여기에는 그 사람이 양심적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은 공공건물이나 다중이용시설일 경우에는 설계자(건축가)와 감리자를 구분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중요한 건물이 건축가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완성이 되어서 말썽이 일어나곤 한다. 반대로 비양심적인 인물이 그 밖의 건물에서 설계와 감리를 도맡아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것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것만 없는 것이 아니다. 설계 자체가 엉터리인 것을 잡아내는 방법도 없다. 건축은 신고와 허가와 승인, 세 종류인데 오피스텔 건물은 허가사항이다. 이 경우 건축법상 하자만 없다면 관청은 허가를 내줘야 한다. 그 내용을 심의할 수준도 장치도 지방자치단체에는 대개 없다. 법적으로는 건축위원회를 두어 심의를 맡게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에서 이들은 건축업자들과 담합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이기 일쑤이다.

이 오피스텔은 동당 57명이 주거하는 건물이다. 그러면 다중시설물 아닌가? 아니다. 우리나라 건축관련법에서 다중이용시설물이란 극장 교회 대형판매시설처럼 불특정 다수인이 드나드는 건물을 말한다. 여러 명이 산다고 해서 다중이용시설물이 아니다. 감리 규정이 널널하다.

그러면 여러 명이 주거하니까 주거용 건축물로서 규제를 받을까. 아니다. 오피스텔은 사실상 주거용 건물이면서도 사무빌딩 취급을 받는다. 오피스텔이라는 것이 주거지 공급을 많이 하려고 정부 스스로 편법으로 만들어 놓은 주거공간이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건축관련 법에 아예 규정도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설계되고 시공되고 규제도 없다.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는 주거공간이면 엄밀히 말하면 아파트가 되어야 하고 아파트는 건축허가보다 까다로운 사업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오피스텔이라 허가로 족하다. 허가 내준 지방정부의 책임이 사라진다.

날림공사를 한 시공업체와 감독기능을 무시한 감리업체에게는 책임이 있다. 부실공사에 책임이 있는 업자는 형사처벌과 행정처벌을 받는다.

부실공사나 감리를 한 업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건축법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면 무기징역이나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하자담보책임 기간에 다중이용 건축물의 기초와 주요 구조부에 중대한 손괴(損壞)를 일으켜 공중(公衆)에 대하여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라는 단서가 있어서 다중이용건축물이 아니거나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은 부실건축물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 삼기는 애매하다.

행정처벌은 업체의 소재지 지방자치단체(이 경우 경기도청)이 내리는데 건설산업기본법 에 내용이 명시돼 있다. 83조에는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하여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야기하여 공중(公衆)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건설업 면허를 등록말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82조에는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한 경우'1년 이내의 영업정지나 공사비 30% 이하의 벌금형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리도록 되어 있다. 아산오피스텔은 완공 전에 무너져 내려서 다친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83조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가 되기 어렵다. 결국 한국의 건축관련 처벌 규정은 부실건축 자체를 처벌하지 않고 사람이 죽어나가야 처벌이 가능하다. 예방 기능은 전혀 없다.

더구나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별표에는 부실공사로 받게 되는 영업정지 기간을 10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 5개월, 6~9명이 사망한 경우 4개월, 2~5명이 사망한 경우 3개월을 내리도록 되어 있다. 부실공사로 사람이 죽어도 영업정지 몇 달 받으면 그만이다.

문제의 아산오피스텔은 수사 결과 시공자가 서류상 업체가 아니라 건축주였다. 건축주 한창희(65·경기도 오산시 거주)씨가 인석디엔씨로부터 면허를 빌려서 시공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면허대여업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인석디엔씨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등록말소라는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등록말소를 받아도 대표자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재등록을 할 경우 방법이 없다.

건축주 한씨가 시공사 면허를 돈 주고 사서 제멋대로 공사한 것으로 봐서 설계도 감리도 이름만 빌린 것일 수 있다. 이런 불법이 가능한 것도 법이 허술해서다. 건축법상 감리회사는 감리일지를 작성하고 건축물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감리중간보고서를, 완공단계에서는 감리완료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으나 그걸 제출해야 하는 곳은 정부가 아니라 건축주이다. 건축주는 건물이 완공됐을 때에 사용승인을 받기 위해 지방정부에 이 보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건축주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감리사로 이름을 올린 한 감리의 책임은 두리건축사사무소가 진다. 부실감리업체는 산업안전법에 따라 등록취소를 받게 되지만 그 기한은 1년이다.

아산 오피스텔은 무너지지 않았다면 감리업체도 면허를 대여한 시공업체도 적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허술한 규정을 타고 전국에서 이런 짝퉁 건축은 수없이 지어지지만 사고가 나지 않는 한 적발은 불가능하다. 적발을 해도 처벌은 약소하다.

건축·건설업계에 만연한 비리를 바로잡는 데에 힘써온 새건축사협의회 함인선(55·선진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회장은 최근 펴낸 책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에서 아산 오피스텔이 '집장사'가 땅주인한테 돈을 벌어줄 테니 오피스텔을 짓자고 하고 건설회사 면허를 대여해서 멋대로 공사한 결과 부실공사가 일어난 것이라 추정했다. 추정은 맞았다. 집장사 자신이 땅주인이라는 점만 달랐다. 함 회장은 "범죄를 막으려면 범죄 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들켜서 치러야 할 대가와 잡힐 확률을 국가가 높이면 된다. 사전에 관리감독 기능을 만들면 잡힐 확률이 높아지고 사후에 엄격히 처벌하면 치러야 할 대가가 높아지는 데 우리나라는 두 가지가 다 안 되는 가운데 본보기식 처벌만 요란하니까 절대로 문제가 바로잡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가 손놓은 대표적인 기능으로 유명무실한 감리 기능을 꼽았다. 감리만 제대로 하면 부실시공은 막을 수 있다. "감리의 기능은 두 가지가 있다. 법에 맞게 건축하느냐를 따지는 검사(inspection)업무와 건축가의 설계대로 시공하는가를 살피는 감독(investigation)업무가 있다. 감독 업무는 건축가 고유의 역할이지만 검사 업무는 원래 공무원이 할 일이다. 과거에는 공무원이 착공검사_중간검사_준공검사에 이르는 3단계 검사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이것이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김영삼 정부에서 건축사에게 위임을 했다. 위임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검사 업무와 감독 업무를 묶어서 감리비용 자체를 건축주가 내도록 했다. 그러니 돈 주는 건축주가 감리자를 멋대로 휘두르는 게 가능해졌다.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정부가 고유 영역인 검사업무를 해야 하는데 규제완화만 외치는 정부에서 그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술한 규제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뢰밭 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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