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위태위태한 서울의 '할아버지 아파트'

김창성 기자 2016. 12. 1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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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이 깨지고 외벽 페인트칠이 심하게 벗겨진 충정아파트. /사진=김창성 기자
금가고 칠 벗겨진 외벽 노출됐지만… 주민들 일상은 현재진행형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최첨단도시 서울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아파트가 있다. 곳곳에 금이 가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외벽은 아직 6~7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삭막해 보이는 건물을 자연스레 드나드는 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지난 6일 찾은 서울의 대표 노후 아파트인 ‘충정·미동·서소문·회현제2시민’ 아파트의 풍경이다. 경주 지진으로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됐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노후 아파트의 삶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87살 ‘충정’· 48살 ‘미동’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로 나오면 눈에 띄는 초록색 건물이 있다. 더 가까이 가면 금가고 칠이 벗겨진 허름한 외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충정아파트다.

1930년에 준공된 5층짜리 허름한 아파트에는 아직도 47가구가 거주한다. 당시에는 최신식 건물이었을 충정아파트는 이제 87살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다.

해방 뒤 건물을 개조해 한때 호텔로 사용되다 다시 아파트로 바뀐 뒤 현재에 이른다.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 1층에서는 편의점과 김밥집 등 6개의 가게가 영업 중이다.

충정아파트 뒤편으로 향하는 골목길 양옆은 이미 건물이 삭아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였다. 건물 뒤편에 다다르자 그늘진 풀숲이 우거진 작은 공터가 나왔고 곳곳에 상처 난 충정아파트의 민낯이 더 확연했다.

충정아파트에 비해 다소 관리가 잘된 미동아파트. /사진=김창성 기자

충정아파트에서 도보3분 거리에는 1969년 준공된 또 다른 노후건물 미동아파트가 있다. 충정아파트와 달리 건물 외벽은 온통 노란색이었다. 미동아파트 역시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졌지만 충정아파트보다는 관리가 잘됐고 작은 승강기도 있었다.

건물 1층에는 10여개의 간판을 단 상점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영업을 안 하는 곳도 더러 있었지만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은 충정아파트보다 다소 많았다.

인도 바로 옆에 있는 충정아파트와 달리 미동아파트는 골목 안쪽으로 30여m 들어와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48살 먹은 허름한 8층짜리 건물에 아직 90여세대가 거주한다는 사실은 역시 놀라웠다.

◆120m의 거대한 성벽 ‘서소문아파트’

미동아파트에서 도보 5분 거리에는 1971년 완공된 서소문아파트가 있다. 126세대가 사는 서소문아파트는 9개동이지만 120여m에 이르는 건물이 끊기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사실상 1개동이나 다름없다.

약간 구부러진 골목길을 따라 7층짜리 연한 살구색 건물도 사람의 등이 구부러진 듯 통째로 휘었다.

서소문아파트의 구부러진 건물 모양에 대해 주민들은 뒤편 경찰청 건물을 감싸는 성벽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길게 구부러진 건물 모양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함이 묻어났다.

건물 모양이 독특하지만 서소문아파트 역시 앞선 두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1층 전체가 상가다. 건물이 120여m 가량 이어져 있다 보니 식당이나 커피숍 술집 등 상점 수는 더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7동과 8동 사이 작은 출입구로 들어가면 건물 뒤편 작은 골목 양옆에는 10여개의 또 다른 식당이 있다.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 소문난 맛집도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웠던 이날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이 목격됐다.

성벽처럼 건물이 길게 이어진 서소문아파트. /사진=김창성 기자

하지만 앞선 두 건물보다 규모가 큰 서소문아파트 역시 완공된 지 46년이 지난 만큼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 예사고 외벽 곳곳에 균열이 보였다. 각 동 출입구는 다소 지저분했고 승강기가 없어 고층 주민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3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건물이 오래된 데다 요즘 지진뉴스까지 나와 불안하지만 어차피 사는 사람도 없고 팔 사람도 없는 아파트라 주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두운 기운 ‘회현제2시민아파트’

마지막으로 찾은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이날 찾은 노후아파트 중 전체적으로 삭막한 분위기가 가장 두드러진 곳이었다.

이곳은 지난 2004년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 판정이 나와 2006년 정비계획이 수립되고 주민 철거동의도 얻었지만 일부 입주민과 보상비용 범위를 두고 갈등이 불거져 계획 이행이 10년째 지체됐다. 1970년 완공돼 47년이나 됐지만 아직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유다.

특히 건물 곳곳에는 서울시의 재건축 관련 안내문에 반발하는 입주민들의 반박문이 붙어 있어 대립 상황을 짐작케 했다. 또 바퀴벌레 약을 수령하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문까지 더해져 열악한 생활환경도 실감케 했다.

위험 경고문이 붙은 회현제2시민아파트의 구름다리. /사진=김창성 기자

주민 A씨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반대편 건물이나 저층부는 습해서 바퀴벌레가 극성일 만큼 생활환경이 좋지 않다”며 “특히 옹벽이나 구름다리를 비롯해 건물 곳곳이 위험하지만 보상비용 등에 이견이 있어 아직 남은 사람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처럼 건물은 전체적으로 위험이 가득했다. 아파트 외벽은 벌어진 틈을 시멘트로 덧댄 흔적이 드러났다. 건물 7층과 주차장을 연결하는 구름다리에는 무거운 짐을 옮기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폭 150cm 길이 20여m인 이 구름다리는 허름한 콘크리트 기둥 3개가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었다. 구름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건물 저층부는 어두컴컴한 모습을 띠며 위태로운 건물의 실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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