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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일반 회사원이 목조주택 건축주가 된 후기 V. Epilogue

1 안락삶 8 586 09.04 07:48

V. Epilogue 


 워킹데이로 52일간 집이 완공되는 시간치고는 짧지만 심경의 변화만큼은 다이내믹했던 기간이 지나고 집이 완성되었다. 집을 지어보니 인생이 바뀐다. 확실히 가난해졌다. 

매월 금융권에 지불해야 할 이자만 250만원을 넘는다. 이전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가서 한 잔 주문했던 초록색 S社 커피는 이제 쉬이 범접하기 어려운 사치품이다. 옷이요?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해외여행? 내 인생에 어떤 금전적인 호재가 있지 않는 한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자에게도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여권 없이 구글 로드뷰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자고. 조만간 집안에서 pizza를 주문해서 나폴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우리집 엥겔지수는 치솟고 여기저기서 금리를 올리고 대출을 규제한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그만큼 좋지않은 시기에 모든 것을 털어 넣었다. 


다 알고 저지른 일이다. 금전적인 여유는 없어졌지만 나만의 평면도로 지은 나만의 주차장, 나만의 마당,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공동주택에서의 삶보다 더 릴랙스하며 조금 더 일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아이는 이제 걷지 않는다. 디폴트로 뛰어다니고 아무도 이를 제제하지 않는다. 마당이 완성되면 (아직 규사를 넣지 못했다.) 빠운쓰 바운쓰 에어바운스도 설치해 봤다가 고기도 구워 먹어보고 더운 날에는 수영장도 만들어볼 것이다. 백 년 천 년 이 집에서 살 것처럼 스트레스받아 가며 현장에 매일같이 드나들었지만 몇십 년 여생이라도 후회 없이 가족과 병원 신세 안 지게끔 건강하고 재밌게 살다가 자연사하길 희망한다.


내 집 짓기 과정에서 느낀 바를 기억이 빛바래기 전에 일기 쓰듯 기록으로 남기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고 이왕 글 쓰는 거 내 집 짓기를 준비하는 분들 단 한 분이라도 이 글을 읽고 나의 실책을 거울삼아 반복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들여 글을 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나는 시공사라면, 시공업자라면 최소의 이윤만 남기고 제대로 집을 지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손해를 감수하며 그렇게 할 시공사도 없겠지만 노동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기에 그래서도 안된다.

시공사는 시공 노하우와 노동력을 들여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꿈일 수도 있는 집을 짓고 건축주는 비용을 지불하여 그 꿈을 실현시킨다.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정당히 요구되는 돈이면 시공사의 마진이 천만원이든 10억이든 그 집이 필요한 소비자는 기꺼이 지불할 것이고 그 마진의 적정성은 시장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 단독주택 시장에서의 소비자 즉, 건축주가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외로운 처지가 되는 것 같아 서로 알고 있는바를 나누어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미력하나마 일조하고 싶은 마음과 열린 지식 공유를 기반으로 언젠가는 돈 들인 만큼 하자 적은 꽤 괜찮은 집 짓기가 가능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글을 썼고 그와 같은 이유로 공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일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서술해 봤다.


시공사 선정을 정성적으로 할 정도로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던 사장님.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이 분이 정말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들여 집 짓기를 맡길 정도의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적절한 걸까? 아니면 내가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인가? 하루에도 열 번씩 왔다 갔다 했다.

나에게는 책임지고 양육을 해야 할 배우자와 5살짜리 아이가 있고 마찬가지로 사장님도 부양해야 할 배우자와 7살짜리 아이가 있다. 시공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이윤을 줄이고 내 배를 불리고자 어떤 것을 거저 얻어 가려고 시도한다면 마치 사장님의 아이의 먹거리 살 돈으로 내가 채가서 누리게 되는 것만 같아서 일체 공사비를 네고하거나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단 하루라도 지체됨 없이 약속된 건축 비용을 입금하려고 노력했다. 공사 막바지로 접어들 때에는 당장 자금 융통이 어려운 관계로 장인 장모님 명의의 대출과 노후자금까지 빌려 약속된 건축비를 보냈다. 

건축주에게 얼버무려 오도하고 고의로 정보를 누락함으로써 혹은 거짓으로 이득을 누리고자 하면 과연 그 사업은 지속 가능할까. 차라리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오픈하며 불가피한 사유로 자신이 가져갈 마진이 너무 줄어 생계에 지장이 있으니 다른 공정 혹은 다른 자재를 조절해 자신의 인건비라도 보전하겠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면 반대했겠는가. 

 

너무 소소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추잡해 보일까 봐 안 쓰려다가 하나만 써본다. 

건식 난방공사가 완료된 시점이다. 원래 강마루 시공은 주방가구류와 함께 H社에서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강마루 시공 당일 H社에서는 현장이 건식 난방일 줄은 몰랐다며 건축주의 시공 하자에 대한 AS 포기 각서 없이는 공사 진행을 않겠다며 차를 돌려 가버린 일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마루 시공 업체를 수배해 며칠 뒤 강마루 공사를 진행키로 했고 그 사이 H社에서 미리 현장으로 입고했던 강마루 자재는 회수해 갔는데 걸레받이 몰딩 자재는 그대로 두고 갔다. 이때 시공사 사장님과 H社측 통화로 추정되는 대화를 옆에서 언뜻 들었다. 통화 요지는 H社에서는 한 번 출고한 걸레받이 자재는 회수가 어렵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새로 계약한 마루 업체가 강마루 시공을 완료해서 현장을 방문했는데 걸레받이의 색감이 이질적이다. 배우자는 저 걸레받이가 H社 제품인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나도 자세히 보니 그런 것 같다. H社 자재 입고 당시 모든 자재는 팬트리 공간에 놓여 있었고 마침 나는 팬트리 선반을 제작해야 해서 그 모든 자재를 내가 직접 거실 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잘 안다. 그리고 H社에서 강마루 자재를 회수하러 왔던 날에도 내가 현장에서 걸레받이 몰딩을 제외한 모든 자재 반출하는 장면을 다 목격했기에 확신한다.

이때 만이라도 사장님이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마진이 현저히 줄어 걸레받이라도 비용을 아껴보고 싶은데 가능하냐 제안하셨으면 괜찮았을것 같다. 

그러나,


"원래요. 마루 색깔하고 걸레받이 색깔 맞추기 힘들어요"


하고 만다. 우리 부부는 그냥 속아줬다. 

그러고는 사장님이 공사를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할 적에 남은 자재들도 정리했다. 이때 잔여 강마루 자재를 전달받았는데 H社 로고가 있는 포장지에 그대로 담아 테이프로 봉해서 주시더라.

 

한샘 걸레받이 자재 입고당시 사진.jpg↑H社 강마루 시공 전 걸레받이와 접착제 자재를 내가 옮겨놓고 촬영한 사진

 

 

 

한샘 걸레받이 사진.jpg↑시공사 사장님으로 부터 전달 받은 잔여 강마루 자재

 

(1) 마루 공사를 취소하고 자재를 회수하던 H社에서 현장에 긴 비닐이 필요할까 봐 몇 장 주고 갔을까?

(2) 새로 계약한 마루 시공 업체에서 공사전 H社 비닐에 걸레받이 몰딩을 담아온 것일까?

(3) 시공사 사장님이 잔여 자재 회수하는 날을 대비해 H社 비닐을 보관하고 있던 것일까?


셋 중 하나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면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 

돌려받을 수 있었던 저 걸레받이 자재 비용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나? 금액을 떠나 이런 기망행위는 건축주를 확실히 무시하는 행위로 보인다. 건축주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정석 시공을 한다는 시공사의 말에 쓴웃음이 지어진다.

이런 방식으로 이윤을 늘려 나가는 것도 사업자의 능력으로 인정해야 하며 마땅히 얻어 가야 할 대가일까? 이런 돈으로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좀 더 근사한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하면 떳떳하게 온전히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이다.

 

이때부터 긴가민가했던 마음은 한 쪽으로 정리되었고 신뢰가 붕괴되니 주택 관련된 일로 연락할 일이 생겨도 매우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적 성공적인 건축주라고 생각한다. 시공사가 돈만 받고 잠적해버려 어쩌면 지금까지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어찌 됐든 집이 완성되고 비 올 때 물 안 새면 이 시장에선 85점 90점 이상은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큰 하자만 없길 바라고 누차 강조하지만 예비 건축주라면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만큼 더 행복한 집 짓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일부러 공사를 4월 1일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4월부터 6월까지 날씨도 잘 도와줬다. 아주 큰 비가 없어 날씨로 인한 공사 어려움도 없었고 골조 공사 기간 중 하루 이틀 비는 왔지만 따로 방수포를 덮지 않았어도 이후 문제없이 건조됐다.

경량목구조로 공사하기에는 적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웃을 잘 만나서 행복하다. 

막연히 단독주택 생활하면 다 남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경계 문제로 소송전까지 번진 이웃, 이웃에서 넘어온 나뭇가지로 으르렁대는 이웃도 있고 어느 한마을 전체가 서로 원수지간인 곳도 있다고 들었다. 상상만 해도 삶이 고단할 듯하다. 그에 비해 공사 시작부터 수도와 전기까지 아낌없이 빌려줬으며 그 과정에서 시공사의 실수로 두 번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고곳곳에 시멘트가 튀고 골조에 잘못 박힌 못을 빼는 시공을 하다가 총알처럼 튀어나간 못에 비싼 독일 시스템창이 손상받았음에도 우리 집이 빨리 잘 지어지기만을 응원해 준 옆집을 이웃으로 둔 것부터 나는 복받은 건축주이다.

또 다른 이웃 토지주분도 장기간 자재 적치를 허용해 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붕 막장.jpg↑막장처럼 느껴졌던 지붕 방습지 공사를 하며... 언젠가는 빛을 보기 위해 그 빛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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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시간을 쪼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아프지 말고 웃는 날이 더 많기를 바랍니다. 




Comments

8 trueman 09.04 08:53
정성스럽게 정리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내 집짓기를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꼭 몇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물론 수많은 다른 상황에 다 대응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진짜 경험에서 나온 찐(?) 사례이니까요. 바운스바운스 사진도 나중에 함 올려주셔요~^^
1 안락삶 09.04 08:59
@trueman 님
귀중한 시간을 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어빠운스 설치하면 사진 촬영하여 올려보겠습니다.^-^
7 joel 09.04 11:13
에어바운스 설치를 저희 아들이 보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수영장 설치를 안해줘서 삐졌었거든요.

며칠 전 아들 하교길에도 반가운 마음에 둘러보며 왔었네요.
G 건폐 09.04 13:17
건축사를 선정하고 건축사가 믿고 맡길수있는 시공사 선정에 도움을 주었다면 더욱 편했으리라 봅니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결과물을 보지않는 이상 어떤 퀄리티가 나올지는 사실 복불복이라 봅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고생한만큼 보금자리에서 안락한 삶을 영유했으면 좋겠습니다. :)
1 안락삶 09.04 15:25
@joel 님
ㅎㅎㅎ 저희도 가지고있는 에어바운스는 없어서 대여해보려고요. 넉넉하게 큰거 설치하게되면 놀러오세요~^-^

@건폐 님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운받아 열심히 살아볼께요. ^-^
G 시공자 09.05 20:06
1편부터 보면서 집짓는 시공자로써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집짓기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축주님  응원합니다.~!  화이팅~!
G 패시브 09.11 15:35
여유가 되시면 사시면서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세요.
1 안락삶 09.11 20:35
@시공자 님
 저도 응원합니다. 누구나 믿고 시공을 맡기는 그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패시브 님
 좋은 생각 입니다. 주택에 살며 겪는 이런 저런 이야기도 써 보도록 할께요! ^-^
 패시브건축협회 게시판을 제가 너무 도배한듯 하여 개인 블로그나 포스트를 이용하겠습니다.
 실내 창호나 도어류 이야기도 조금 더 상세히 써보려고 합니다 ㅎㅎ
 귀중한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